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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를 풍미한 원조 전차 개발국의 자존심 / FV-4201 치프틴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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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서 주행 중인 FV4201 치프틴 전차 <출처: Alf van Beem/ Wikimedia>

 

 

 

개발의 역사

 

순항전차는 중전차와 달리 첨단 소재의 장갑을 활용하여 기동성과 속도를 높인 전차로, 수량이 적고 가격이 높은 중전차 대신 기동성이 높고 가격이 낮은 순항전차를 대량으로 양산하여 적을 압도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영국은 1938년대부터 이미 A9, A10 순항전차를 개발해 실전 배치했으며, 이후 A13, A-13 Mk.II, A13 Mk.III ‘코비넌터(Covenanter)’를 1940년, A15 크루세이더(Crusader)를 1941년부터 운용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대활약한 A27 크롬웰(Cromwell) 전차는 1944년부터 전장에서 활약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다시 1944년부터 등장한 A34 코멧(Comet) 전차로 계보가 이어진 후 1946년 ‘센추리언(Centurion)’ 전차로 승계됐다. 영국 육군은 순항전차와 별개로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1945년 이후로 구축전차(Tank Destroyer)인 채리오티어(Charioteer)와 중(重)구축전차 컨쿼러(Conqueror)를 1953년부터 실전 배치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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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리온 전차는 2차대전후 영국군의 주력전차로 6.25 전쟁에도 투입된 바 있다. <출처: Public Domain>

 

 

한편, 냉전이 시작되며 자유 진영의 경쟁자가 된 소련이 IS-3/IS-4 중전차와 T-54/T-55 계열의 전차를 내놓기 시작하자 영국은 컨쿼러 전차의 장갑을 두껍게 개선하기 시작하면서 120mm 포를 장착했으며, 향후 전차의 용도가 역할과 기능을 강조한 전차보다는 적절한 장갑 두께와 기동력, 화력을 겸비한 전차 쪽으로 가기 시작하자 컨쿼러의 화력 및 기동력, 그리고 센추리언의 능력을 겸비한 전차의 개발 쪽으로 차기 전차 개발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에 이미 센추리언 개발에 참여했던 레이랜드(Leyland)사는 자비를 들여 차기 전차 개발을 추진했으며, 1953년부터 개념 개발에 들어가 1956년 차기 신형 전차의 시제 차량을 출고했다. 레이랜드가 출고한 차량은 센추리언보다 경량이라는 의미로 FV4202 “40톤 센추리언”이라 불렀으며, 뒤로 젖혀진 조종수 좌석과 맨틀릿(mantlet) 없이 주포를 설치하는 설계를 도입했다. 그 결과 F4202는 개량된 센추리언 차체에 20파운드 주포를 얹은 새로운 개념의 포탑을 도입한 전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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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프틴 시제전차 6대 중의 1대인 00DA02호차 <출처: 보빙턴 전차 박물관>

 

 

 

레이랜드의 시제차를 본 영국 전쟁국(War Office: 1964년 국방부에 흡수)은 이 전차의 ‘등급’을 어떤 식으로 규정할 지를 놓고 고민했다. 우선 성능과 화력으로 볼 때 중전차로 분류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컨쿼러 중전차보다는 화력이 큰 편이었고, 반면 중량과 기동력은 중형 전차인 센추리언과 유사했다. 신형 전차의 화력과 장갑은 현존 전차보다 우수했으며, 엔진은 경유와 일반유를 모두 쓸 수 있었다. 주행 능력도 우수해 험지 주행력이 좋은 편이었으며, 심지어 조금만 손을 대면 도하(渡河) 작전도 수행이 가능했다. 특히 전쟁국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한 부분은 전차의 실루엣이었다. 기존 전차에 비해 미적(美的)으로도 나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체 방호 능력 목적에도 부합했기 때문이다. 낮고 납작한 외양과 급경사가 적용된 차체 전방 실루엣 덕에 전차는 적에게 표적으로 포착 당할 가능성이 낮았다. 영국 전쟁국은 이에 차기 전차를 ‘주력전차’로 분류하기로 했으며, 곧 신형 전차 요구도 작성에 돌입해 요구도에는 1953년까지 센추리언 전차와 컨쿼러 전차가 6·25 전쟁에서 얻은 경험을 녹여 넣었다. 이에 근거하여 차기 전차 요구도는 장거리의 방어진지에서 적과 교전이 가능하고, 적의 야포 공격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으며, 전면부 장갑을 강화하고, 포신각 또한 컨쿼러의 8도보다 큰 각을 요구했다. 또한 주포의 발사 속도는 최초 1분 동안 분당 10발을 사격하고, 이후 4분간은 분당 6발을 사격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도에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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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수락시험평가 중인 치프틴 시제전차 <출처: Public Domain>

 

 

 

레이랜드는 1959년에 첫 시제 차량을 제작하여 영국 육군에 시험 평가용으로 납품했으며, 이들 시제 차량은 이전 시제차의 문제점이었던 엔진 진동과 냉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차체 후면을 새롭게 설계했다. 이 설계 변경 때문에 차체의 무게가 50톤까지 증가했으므로 이를 견딜 수 있도록 현가장치(懸架裝置: suspension)도 교체됐다. 또한 트랙패드(trackpad)가 추가되어 도로 파손을 막고 최저 지상고를 소폭 높였다. 영국 육군은 레이랜드가 제출한 설계를 검토한 후 1960년 초에 최종 수락해 1961년부터 시험 평가에 들어갔다. 영국 육군은 1962년 국방백서에 처음 치프틴을 표기하면서 ‘주문 중(on order)’이라 표기했다. 하지만 같은 해 시험 평가를 실시하던 중 다소 간의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다. 최고 속도로 주행하자 기어박스가 과열하는 현상이 발생했던 것이다. 특히 과열 현상의 원인이 파악되지 않자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시 검사에 들어갔고, 결국 생산 일정도 반년 이상 뒤로 밀리고 말았다. 문제가 개선되고 난 후 치프틴의 수락 시험은 1963년 초부터 다시 재개됐으며, 더 이상의 문제가 없다면 1965년 초부터 실전 배치에 들어가는 것으로 일정을 재조정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시험은 성공적으로 종료함에 따라 영국 국방부는 치프틴의 실전 배치를 승인하여 1965년부터 센추리언과 교대시키기 시작했다.
 

 

 

FV4201 치프틴 주행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이후 자체 전차 개발에 관심을 갖던 이스라엘 병기단 측이 영국에 접촉을 해오면서 치프틴을 바탕으로 한 전차의 공동 개발 계획을 타진해왔다. 이는 이스라엘 방위군(IDF: Israeli Defense Forces) 소속으로 이스라엘 독립전쟁(제1차 중동전쟁)부터 참전해 온 베테랑인 이스라엘 탈(Israel Tal, 1924~2010) 장군이 추진한 계획으로, 그는 시나이 전쟁(제2차 중동전쟁, 1954) 후 이스라엘 환경에 맞춰진 전차 개발의 필요성을 제창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치프틴 일부와 기술을 구입한 후 이스라엘 환경에 맞춰 설계를 개선한 후 국내 생산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를 위해 총 2대의 치프틴 시제 차량을 도입한 후 4년 간 시험 평가를 실시했다. 하지만 양국의 전차 개발 논의가 진행되던 중 1960년대 말부터 영국의 중동 정책 방침이 변화했다. 영국이 친아랍 정책을 취하면서 요르단을 비롯한 주요 중동 국가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의 협력이 껄끄러워졌던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은 이미 적지 않은 기술과 전술 정보가 이스라엘에 전달됐음에도 불구하고 1969년을 기준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전차 공동 개발은 물론 모든 방산 물자의 수출까지 중단했다. 하지만 이미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영국과 공동 개발을 실시하면서 사막 환경에서도 무리 없이 운용할 수 있는 전차 기술의 토대를 마련한 상태였으므로 이스라엘은 그간 영국으로부터 이전 받은 기술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병기단 주도로 자체 전차 개발에 들어가 메르카바(Merkava)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특  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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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프틴은 급격한 경사각의 전면부와 납작한 포탑을 특징으로 한다. <출처: Public Domain>

 

 

치프틴의 특징은 급격한 경사각이 들어간 차체 전면부와 납작한 포탑, 그리고 두터운 전면 장갑에 있다. 치프틴은 조종수 좌석을 거의 누운 형태로 설계했기 때문에 차체 높이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차체부 전면 장갑 두께는 120mm, 경사로 발생하는 두께까지 고려하면 최대 388mm 효과까지 발생하며, 포탑부는 195mm 장갑이 적용되었으나 정면에서 공격받을 경우 경사를 이용해 최대 390mm 두께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또한 주포 부위에는 맨틀을 없앰으로써 차체 높이를 낮춘 상태로 포신각을 최대한 넓게 가질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후기 치프틴에는 센추리온에 없었던 화생방(NBC) 방호 장비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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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빙턴(Bovington) 전차 박물관에서 전시 주행 중인 치프틴 전차 <출처: Peter Trimming / Wikimedia>

 

 

 

치프틴은 포신이 긴 L11A5 120mm 강선포를 장착했으며, 유도 안정판을 두 개 설치했다. 현대의 전차와 달리 치프틴은 포탄과 장약을 별도로 탑재했으며, 장약은 가연성 봉지에 나누어 담겨있다가 발사 전에 포신 안에 채워졌다. 장약은 기밀성 보관통 36개에 나누어 담겨있었으며, 안은 물과 에틸렌글리콜로 채워진 용액에 담겨있었다. 이는 포탑이 공격 받을 경우 유폭을 막기 위한 조치였는데, 전차가 관통 당해 보관통까지 깨지는 상황이 되더라도 용액이 장약을 적심으로써 장약이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구조였다. 포탄 탄피가 따로 없었으므로 발사 시에는 열 발들이 탄창에서 자동으로 장약을 빼 발사관에 직접 채워 넣은 후 발사되게끔 설계됐다. 무전기나 탄약, 화력통제 장비는 대부분 포탑 뒷부분 공간에 적재되었으며, 추가로 탑재할 물건이 있을 경우는 포탑 외부에 설치한 수납 공간에 탑재했다. 포탄은 고폭 플라스틱탄(HESH: High Explosive Squash Head), 날개분리철갑탄(APDS: Armour-piercing Discarding Sabot)과 연습탄을 운용할 수 있으며, 주포 포탄은 최대 64발(APDS의 경우는 장약 공간 문제로 36발)을 적재할 수 있고, 포신의 안정은 자동화 통합 통제체계로 관리됐다. 통상 주포는 전차장과 포수가 동시에 조작할 수 있으나 만약 두 사람의 명령이 충돌하게 될 경우 전차장의 통제권을 우선하도록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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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신 주변에 독특한 맨틀렛(mantlet) 설계가 적용된 치프틴의 포탑 확대도 <출처: wikimedia>

 

 

 

부무장으로는 7.62mm 공축기관총 한 정을 설치했으며, 12.7mm 거리측정용 기관총과 7.62mm 대공기관총도 각각 한 정씩 전차장 큐폴라 앞에 장착했다. 치프틴은 레이저 거리측정기가 도입되기 전까지 독특한 방법으로 사거리를 측정했다. 치프틴에는 주포와 매우 유사한 탄도 특성을 가진 거리측정용 기관총을 주포와 동일한 방향으로 장착했으며, 먼저 포수가 거리측정용 기관총을 쏴 표적에 명중하는 것을 확인하면 표적이 포 사거리에 들어왔음을 인지하고 주포를 발사하는 형태였다. 치프틴의 후기형은 50구경 M2HB 기관총을 거리측정용 기관총으로 장착했으며, 후에 쿠웨이트와 이란이 치프틴을 구입했을 때에도 50구경 기관총을 거리측정용으로 제공했다. 치프틴은 전투 간 총 64발의 포탄을 적재할 수 있었다. 후기형 치프틴은 거리측정용 기관총을 제거한 대신 바 앤 스타우트(Barr and Stout)사의 LF-2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장착해 최대 10km 범위 내에서 목표물까지의 사거리를 측정할 수 있으며, 특히 LF-2는 화력통제체계와 연동이 가능했으므로 표적 식별 후 타격까지의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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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번호 06-FA-10으로 버킹검셔(Buckinghamshire) 철도본부 야외에 전시 중인 치프틴 전차의 후면 <출처: Oxyman/Wikimedia>

 

 

 

치프틴의 두 종류 이상의 연료 사용이 가능한 6기통 엔진과 기계식 변속 장치를 장착했으며, 현가장치는 스프링 및 완충기와 연결되었다. 캐터필러에는 금속 관절과 고무 라이닝이 들어가 내구성을 높였다. 치프틴의 엔진은 1957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1974년까지 장장 17년에 걸쳐 개발된 이력이 있다. 치프틴 개발 초기인 1950년대 중후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회원국들에게 두 종류 이상의 연료를 사용하는 엔진을 채택할 것을 권장했다. 이에 영국 전쟁국은 두 개의 설계 제안을 채택하여 하나는 로버스(Rover)사에, 또 하나는 레이랜드에 생산을 맡겼다. 당시 두 회사는 어느 정도 함께 협업 형태로 개발을 진행했으나 두 회사가 모두 개발에 실패했기 때문에 치프틴 내부에 들어갈 장비도 모두 교체돼야 할 위기에 봉착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엔진 공간으로 비워놓은 곳에 역피스톤 방식 엔진 크기가 들어맞았기 때문에 전차의 외관 설계를 건드리지 않고 대체 엔진으로 개발을 계속 추진할 수 있었다. 문제는 대체용으로 넣은 엔진이 전차용으로 개발한 엔진이 아니었으며, 적절한 성능 시험이 완료되기 전에 장착이 결정됐다는 점이다. 이는 사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 조약기구 간의 경쟁이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차기 전차의 실전 배치가 시급해진 영국의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였다. 치프틴은 엔진 개발 실패로 우선 약 450마력(340kW) 출력 엔진을 장착했는데, 이는 최대 속도를 40km/h 이하로 낮추었을 뿐 아니라 험지 주행 능력에도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이 문제는 호스트만(Horstmann) 코일 스프링 현가장치에도 무리가 발생해 험지 주행 능력뿐 아니라 승차감도 떨어지게 하는 영향을 낳았다. 이 때문에 치프틴은 중량 대비 출력이 크게 떨어져 대부분의 운용 기간 중 속도가 낮았으며, 엔진 과열 문제도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이 문제는 1970년대 말에 가서야 벨조나(Belzona) 강화테이프가 도입됨에 따라 엔진 설계가 일부 변경되었고, 실 라인(seal lining)이 개선되면서 엔진 출력도 크게 개선됐다. 덕분에 후기형 엔진은 최대 850마력(630kW)까지 출력을 내어 최고 속도와 험지 주행 능력도 향상됐다.

 


 

 

2017년 치프틴 탱크 데모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치프틴의 양산은 1960년대부터 비커스(Vickers)와 리즈(Leeds) 왕립 병기 공장에서 나누어 진행했으며, 최초 배치 분인 영국군 라인강 수비군(BAOR)용 배치분은 1972년에 완성됐다. 치프틴은 양산 후 몇 차례 현대화 작업을 거쳤으며, 주로 화력을 늘리고 고급 화력통제장치를 장착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치프틴을 가장 대량으로 도입한 해외 국가인 이란은 자체적으로 스노켈을 설치하여 5m 이상의 강이나 하천을 도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운용 현황

 

치프틴 전차는 2차 세계대전 후 서독에 전개되어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공격을 대비했던 라인강 수비군(British Army of the Rhine, BAOR)에 우선 배치되었다. 치프틴은 주로 중동 지역으로 수출되어 팔레비 왕조 시절의 이란, 요르단 왕국, 오만, 쿠웨이트, 이라크 등에서 실전 배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작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맹국이나 영연방 국가에서 도입한 사례는 없다. 첫 모델은 1967년에 실전 배치되어 이란, 쿠웨이트, 오만, 요르단에 판매됐으며, 이스라엘은 영-이스라엘 공동 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두 대의 치프틴을 도입했으나 영국과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사업이 중단되면서 그간의 공동 개발 기술을 바탕으로 메르카바(Merkava) 전차가 개발됐다. 치프틴이 가장 대량으로 팔린 국가는 이란으로, 이스라엘의 전차 개발 사업 책임자이던 탈(Tal) 장군의 주선으로 700대 이상의 전차 수출이 성사됐다. 이에 따라 Mk.-3P와 Mk.-5P(P는 페르시아의 머리글자) 707대, FV4030-1 187대, ARV 41대, AVLB 14대가 이란에 인도됐다. 이란은 FV-4030-2와 FV-4030-3 형상도 도입할 예정에 있었으나,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 터져 팔레비 왕조가 전복됨에 따라 모든 거래는 취소됐다. 당시 이란은 이미 대금을 치른 상태였기 때문에 이 대금에 따른 제품 인도 문제는 오랫동안 양국 사이의 문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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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턴 전차 박물관에서 시연 중인 치프틴 전차 <출처: Andrew Skudder/Wikimedia>

 

 

 

치프틴은 최초 배치부터 1990년대 초 챌린저(Challenger) 전차와 교체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가 실시됐다. 치프틴의 최종 형상은 영국군이 1995년까지 운용했으며, 이 형상에는 영국 육군의 스틸(Stil) 대령과 존 브루어(John Brewer) 대령의 이름을 딴 “스틸브루” 장갑과 고급 화력통제장치(IFCS), 열상관측포병조준장치(TOGS)가 채택되었다. 영국 육군에서 마지막으로 치프틴을 운용한 부대는 티드워스(Tidworth)의 알리왈(Aliwal) 기지에 주둔하던 영국 육군 제1 왕립전차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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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치프틴 업그레이드형인 '모바레즈' 전차 <출처: Public Domain>

 

 

 

치프틴은 1980년~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 양 진영에 모두 투입되었으며, 이때 사상 최대 규모의 전차전인 나스르(Nasr) 작전(1981년 1월 5일~9일)에서 격돌했다. 이때 치프틴 Mk. 3/5는 고질적인 엔진 문제와 낮은 출력 대비 중량비 때문에 거친 지형에서 기동을 하다가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았고, 속도가 처지는 경우도 다반사라 적 전차의 고정 목표가 되기 일쑤였다. 나스르 전투 초기에는 양 진영이 875대가 넘는 전차를 투입했지만 전투 후까지 생존한 전차는 200대 미만이었다. 이란은 현재까지 치프틴 전차를 자체 업그레이드하여 운용 중이며, 이 형상에는 “모바레즈”(Mobarez)라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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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 민병대가 2015년 이라크 군으로 보낸 치프틴 전차의 재생모델 <출처: Public Domain>

 

 

쿠웨이트 또한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약 143대의 치프틴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1990년 8월 2일 알 자흐라(Al Jahra)에서 이라크군과 쿠웨이트군이 격돌한 쿠웨이트교(橋) 전투에 37대가 투입되었다. 당시 살렘 마수드 알-소루르(Salem Masoud Al-Sorour) 대령이 지휘한 쿠웨이트 육군 제35 “알-파타” 기갑여단은 라아드 알-함다니(Ra’ad al-Hamdani) 준장이 이끄는 제1 “함무라비” 기갑사단 및 제2 “메디나” 사단과 격돌했으나 중과부적이었기 때문에 쿠웨이트 측은 사우디아라비아로 퇴각했다. 당시 쿠웨이트 제35기갑여단은 단 한 대의 전차도 상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우디에서 재편했으며, 1991년 ‘사막의 방패’ 작전(Operation Desert Shield)이 시작되자 합동 동부 사령부(Joint Command Forces East)에 포함되어 쿠웨이트로 다시 귀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35기갑여단이 보유한 치프틴을 제외한 잔여 치프틴은 모두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 진주하면서 격파했으며, 쿠웨이트는 걸프전이 종전하자 치프틴을 모두 퇴역시킨 후 유고슬라비아가 T-72를 바탕으로 개량한 전차인 M-84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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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육군 왕립 용기병(Dragoon) 연대 소속 치프틴 Mk.11 전차의 모습.

영국 육군 서필드 훈련대에서 훈련 중 촬영된 것이다. <출처: AlfvanBeem / Public Domain>

 

 

 

치프틴은 1965년 실전 배치에 들어간 이래 냉전 말까지 “챌린저” 시리즈의 등장 전까지 영국 육군의 주력전차로써 위상을 지켰다. 영국 정부는 1991년 두 개 연대 분의 치프틴을 재정비하고자 했으며, 이들 연대에 소속된 약 130대의 치프틴을 계속 챌린저 1과 병행하여 유지하다가 챌린저 2와 교체하기로 했다. 따라서 소수의 치프틴은 1995년경까지 계속 현역 상태를 유지했으나 1998년부터 챌린저 2가 도입됨에 따라 순차적으로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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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월, 서독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연합군 승전일 기념 퍼레이드에서

주행 중인 영국 육군 소속 치프틴 전차. <출처: US Department of Defense>

 

 

 

이란이 영국으로부터 대금까지 치르고 주문했다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인도받지 못한 치프틴의 문제는 아직까지도 법정에서 재판 중이다. 이란 정부는 1971년 영국 정부와 1,700대 이상의 치프틴 전차 및 장갑차 주문 계약을 체결하면서 6억 5천만 달러(미화 약 8억 달러) 대금을 치렀으나 계약이 이행되지 않았으므로 영국 법원에 계약금 반환과 이자를 포함하여 2천만 파운드(미화 약 2,450만 달러)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당시 이란 혁명정부는 혁명 성공 후인 1979년 2월부로 팔레비 왕조가 앞서 체결한 모든 계약을 취소했으며, 치프틴 전차 계약 또한 제품이 인도되지 않았으나 대금은 치러진 상태였으므로 모든 대금과 이자의 반환을 영국 정부에 요구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이란계 은행에 대한 경제 재제조치에 들어갔으므로 이에 동참하여 이란의 요청을 거부했으며, 당시 레이랜드사가 지급 받았던 5억 파운드(미화 약 6억 천만 달러)는 영국 법원이 관리하게 되었다. 이란 정부는 런던 주재 이란 대사관을 통해 전차 대금에 대한 소송을 진행 중에 있으며, 2019년 10월까지 런던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어 영국 정부가 승소한 상태이다. 이란 정부는 즉각 대법원 상고에 들어가 다음 재판은 2020년 3월에 시작될 예정이다. 

 

 

파생형

 

FV4202 “40톤 센추리언”: 레이랜드 모터스에서 제작한 시험용 차량. 구성품 테스트용으로 제작한 차량으로, 조종수 좌석과 주포 덮개를 제거한 포탑을 제안하기 위해 시험했던 차체다. 1956년에 한 대가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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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V4202 40톤 센추리안 전차 <출처: Public Domain>

 

 

 

FV4201 P1 ~ FV4201 P7: 시제 차량으로, 1번(P1)부터 7번(P7)까지 일곱 대가 제작됐다. 최초 차량은 내장 배기소음제거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차체가 짧았다. 지름이 작은 보기륜을 장착했으며, 중량은 최초 형상의 경우 45톤, 후반 차량은 49.5톤이었다. 

 

치프틴(Chieftain) Mk.1: 1965년~1966년 사이에 총 40대가 훈련용으로 제작했으며, 585마력 L60 Mk.4 엔진을 장착하고 변속장치로 TN12 기어박스를 설치했다.

 

치프틴 Mk. 1/2: 치프틴 Mk.1을 Mk.2 사양으로 업그레이드 한 형상. 650마력 Mk 4A2 엔진을 장착했으며, 훈련용으로만 운용했다. 

 

치프틴 Mk. 1/3: 치프틴 Mk.1의 업그레이드. 650마력 L60 Mk 5A 엔진을 장착했으며, 훈련용으로만 운용했다. 

 

치프틴 Mk. 1/4: 치프틴 Mk.1의 업그레이드 형상으로, 650마력 Mk 6A 엔진을 설치하고 거리측정 기관총을 교체했다. 훈련용으로만 운용했다.

 

치프틴 Mk.2: 650마력 L60 Mk.4A2 엔진을 장착하고, L11A2나 A3 강선포를 주포로 채택한 첫 차량. NBC 방호 시스템이 포탑 후면부에 설치됐으며, 지휘관석 해치가 하나로 일체화 됐다. 또한 서치라이트(searchlight) 덮개 부분에서 장갑을 제거하고, 수중 주행을 고려하여 부양판이 추가돼 물속에서도 약 40km/h 속도로 주행할 수 있다. 항속 거리는 약 400km이며, 중량은 51.5톤이 되었다. 1967년 초 서독 호네(Hohne)에 주둔 중이던 제11 후사르(Hussar) 기갑연대에 우선 배치되었다. 1969년 엔진을 650마력 L60 Mk.5A 엔진으로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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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프틴 Mk. 3 전차 <출처: Public Domain>

 

 

치프틴 Mk. 3: 엔진을 650마력 L60 Mk.6A로 교체했으며, 2단계 공기 청정기와 코벤트리(Coventry)사의 클라이맥스 A30(Climax A30) 외부 발전기를 설치했다. 수납 공간이 증가했으며, 지휘관석 큐폴라를 개선하고 주행 속도가 시속 48km/h까지 빨라졌다. 항속 거리 또한 500km로 증가했으며 중량도 53톤이 되었다. 1970년부터 배치됐다. 

 

치프틴 Mk. 3/2: 720마력 L60 Mk. 7A 엔진으로 교체한 형상. 1971년부터 배치됐다.

 

치프틴 Mk. 3/3: 720마력 L60 Mk 7A 엔진을 장착했으며, 주포 거리측정용 기관총 대신 바 & 스타우트 사의 TLS(Tank Laser Sight) LF2 레이저 거리측정기가 설치됐다.

 

치프틴 Mk. 3/G: 치프틴 Mk.3 전차에 엔진 인덕션을 설치한 형상이나 시제 차량만 제작됐다.

 

치프틴 Mk. 3/3P: 1973년 이란에 수출한 치프틴 Mk. 3/3 형상. “페르시아(Persia)” 머리글자를 따 “P”라는 형상 명칭이 붙었다. 

 

치프틴 Mk. 3/S: 치프틴 Mk. 3/G의 양산 형상이나 지휘관 화력통제장치가 추가되어 전차장도 사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형상부터는 모두 기본적으로 장착됐다.

 

치프틴 Mk.4: 치프틴 Mk.3 형상과 동일하나 연료 탑재량이 증가됐다. 두 대만 생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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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쿠빈카(Kubinka) 애국 박물관에 전시된 치프틴 Mk.5의 모습.

해당 전차는 이란-이라크 전쟁 전 이란에 인도된 전차가 이라크에

온전하게 나포된 후 시험을 위해 소련에 인계된 차량으로 추정된다. <출처: Alan Wilson / Wikimedia>

 

 

 

치프틴 Mk.5: 치프틴 시리즈의 최종 형상. 신형 엔진과 NBC 방호체계가 설치됐으며, 외부에 설치된 부무장과 조준시스템이 개선됐다. 

 

치프틴 Mk. 5/5P: 1975년 이란에 수출한 치프틴 Mk.5 형상. 엔진만 1977년에 750마력 L60 Mk. 10A로 교체됐다.

 

치프틴 Mk. 5/2K: 1975년 쿠웨이트에 수출한 Mk.5 형상.

 

치프틴 Mk.6: 1975년 치프틴 Mk. 2를 Mk.5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한 형상. 1975년부터 Mk.1을 제외한 앞 번대 형상은 모두 “토템 폴(Totem Pole)” 사업을 통해 Mk. 5 사양으로 업그레이드를 실시했으며, 클랜스만(Clansman) 무전기와 TLS, 포구 확인 시스템(MRS) 등이 설치되고 포신 또한 L11A3에서 A5로 교체됐다. 엔진 역시 750마력 L60 Mk. 8A로 교체됐다. 업그레이드된 앞 번 형상은 모두 순서대로 Mk.6 ~ Mk.8로 번호가 재지정 됐다. Mk. 6~11은 앞선 형상을 업그레이드 한 형상으로, 통합 화력통제체계(IFCS)가 설치됐다.

 

치프틴 Mk. 7: 1975년 Mk.3와 Mk.3/S를 Mk.5 사양으로 업그레이드 한 형상. 

 

치프틴 Mk. 7C: Mk.7과 동일하나 오만에 수출된 형상. 

 

치프틴 Mk. 8: 1975년 Mk.3/3을 Mk.5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한 형상. 1977년을 기해 전 형상의 엔진을 모두 750마력 L60 Mk. 9A로 교체했으며, 1978년에 “다크 몬(Dark Morn)” 사업과 “선댄스(Sundance)” 사업을 통해 840마력 L60 Mk. 12A로 교체했다. 

 

치프틴 Mk. 9: 1979년, “토템 폴” 사업을 통해 치프틴 Mk.6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후 재지정한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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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mm 주포가 장착된 FV4201 치프틴 Mk.10의 모습.

노스 콘월(North Cornwall)의 전차 전시장 야외에 전시 중인 모습이다. <출처: Hugh Llewelyn / Wikimedia>

 

 

 

치프틴 Mk. 10: 1984년~1986년 “토템 폴” 사업을 통해 치프틴 Mk.7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후 재지정한 번호. 스틸브루(Stillbrew) 승무원 방호 패키지가 추가되었으며, 포탑 전면과 링(ring) 부분이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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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셋(Dorset)의 보빙턴 전차 박물관 내부에 전시 중인 FV4201 치프틴 Mk. 11C형의 모습.

강력한 주포와 전면 장갑으로 인해 한때 치프틴은

"세계에서 가장 가공할 위력의 전차"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출처: Alan Wilson / Wikimedia>

 

 

치프틴 Mk. 11: 1984년~1986년 “토템 폴” 사업을 통해 치프틴 Mk.8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후 재지정한 번호.

 

치프틴 Mk. 12: 1984년~1986년 “토템 폴” 사업을 통해 치프틴 Mk.5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후 재지정한 번호. 열상감시 및 포수조준 시스템(TOGS: Thermal Observation and Gunnery Sight)이 장착됐다.

 

치프틴 Mk. 12/13: 업그레이드 제안 형상이었으나 챌린저 1이 등장하면서 취소됐다.

 

치프틴 800: 신형 구동장치와 초밤(Chopham) 장갑을 추가한 형상. 

 

칼리드/쉬르(Khalid/Shir) 1: 요르단 수출 형상. 차체와 포탑, 무장은 치프틴과 동일하지만 엔진과 변속장치 등은 챌린저 1과 동일한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했다. 화력 통제 장치나 탄도계산 컴퓨터도 신형으로 교체되었다. 최초 칼리드 1은 이란에 수출한 치프틴이 쉬르 2 전차로 교체되는 동안 이란 육군에서 임시로 운용할 목적으로 개발했으나,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발발과 함께 인도되지 않았다. 엔진 공간에는 1,200마력 급 롤스-로이스(Rolls-Royce) CV12 엔진도 장착할 수 있었다. 

 

치프틴 900: 1980년대 초 비커스(Vickers)에서 개발한 파생형. 실험 개발 단계 이상으로 진행되지 못했으나, 초밤(Chobham) 장갑을 설치하고, 신형 구동장치를 설치했으며, 센터(Centaur) 화력통제체계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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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구난구호용 형상인 치프틴 AARV의 모습. 치프틴 AARV는 걸프전에서도 활약했다.

<출처: Hugh Llewelyn / Wikimedia>

 

 

 

FV4204 ARV/ARRV: 장갑 구난구호차량 및 장갑 구난구호 수리 차량.

FV4205 AVLB Mk.5: 교량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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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용 형상인 치프틴 왕립 공병 기갑차량 (CAVRE)의 모습.

CAVRE는 장애물 개척 및 도로 개척, 지뢰 제거, 전차호나 진지 공사 등 다양한 임무에 투입된다.

<출처: U.K. Ministry of Defense>

 

 

치프틴 AVRE(CHAVRE): 왕립 공병대용 장갑차량으로, 1987년 제32 기갑공병연대와 독일 빌리히에 주둔 중이던 왕립공병대 제21 공병기지작업대가 초기형 빌리히 치프틴(Willich Chieftain) AVRE를 개조한 것이다. 1991년까지 독일에 남아있던 48대의 전차도 비커스 디펜스에서 개량하여 모두 공병차로 개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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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에서 전시 중인 "마크스맨(Marksman)" 대공기관포. <출처: MoRsE>

 

 

 

치프틴 마크스맨(Chieftain Marksman): 자주대공포 형상으로, 마크스맨 쌍열포 포탑이 설치됐다.

 

치프틴 지뢰제거차: 지뢰 제거용 형상.

 

치프틴 세이버(Sabre): 30mm 쌍열식 대공기관포를 설치한 형상.

 

치프틴 탄약수송차: 치프틴 차체를 활용해 방공포(“마크스맨”의 35mm 대공포)와 155mm 자주포 포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개발한 형상.

 

쉬르 2: “4030 3단계”라는 별칭으로 불린 이란 육군용 형상. 치프틴 Mk.5와 유사하나 차체 후방도 하향 경사가 들어가 있고, 포탑 좌측의 서치라이트가 제거되었으며, 적재용 바스켓 모양이 달라지고, 전면 경사면의 조종수 해치 주변 수로관이 제거됐다. 이란 이슬람 혁명 발발로 인해 이란에 인도되지 않았으며, 이후 영국에서 개조하여 전량 챌린저 1으로 재조립했다. 

 

모바레즈(Mobarez) 전차: 이란에서 치프틴 Mk.5P를 자체 업그레이드 한 형상. 2006년부터 실전 배치했으며, 전자 장비와 장갑 일부를 교체하고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설치했다. 

 

 

모바레즈 전차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제  원

종류: 주력전차

제조사: 레이랜드 모터즈(Leyland Motors, 1968년 국유화로 브리티시 레이랜드로 개편; 1978년 BL로 사명 변경; 1986년 로버 그룹[Rover Group]으로 재편)

승무원: 4명(전차장, 조종수, 포수, 통신수)

전장: 7.5m

전고: 2.9m

전폭: 3.5m

최저 지상고: 0.56m

전투 중량: 55톤

출력체계: 695마력/518kW 레이랜드 L60 대향(對向) 피스톤 엔진(디젤)

출력 대비 중량: 11.1마력/톤

현가장치: 홀스트만(Horstmann) 수평 코일 스프링 서스펜션 보기(bogy)

변속장치: TN 12

항속 거리: 500km

최고 속도: 48km/h(도로주행 시) / 30km/h(비포장도로 주행 시)

연료량: 890리터 

장갑: 포탑 전방 부분에 195mm 균질압연장갑(RHA, Rolled-homogeneous Armor)

           ㄴ경사면: 127mm(72도)

           ㄴ차체 측면: 50mm(10도)

           ㄴ포탑: 350mm(60도)

주 무장: 120mm L11A5 강선포

           ㄴ 발사 속도: 첫 1분간 분당 10발 / 이후 분당 6발

           ㄴ 포신각: -10 ~ +20도

           ㄴ 레이저 거리측정기 장착

부무장: L8A1 7.62mm 공축기관총 / 큐폴라 설치형 L37A1 7.62mm 기관총

           브라우닝 50인치(12.7mm) 거리측정용 기관총(Mk.1, 2 해당/레이저 거리측정기 대용)

장비: 클랜스만(Clansman) VRC 353 VHF 무전기 2대(1979년 이후)

           C42 1 B47 락스퍼(Lackspur) VHF 무전기 1대(1979년 이전)

           6연장 연막탄 살포기 2대(포탑 위에 설치)

           불도저 삽날(옵션/통상 전차 대대 당 1대에 설치)

대당 가격: 9만~10만 파운드(1967년 기준)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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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출처 : 무기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