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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47

 

 

U-47, 유보트(독일어: U-boot 우보트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해군이 운용한 잠수함은 연합군 보급선을 수장 해군과 군전력을 차단 시킴으로 유명해졌다. 바다 밑의 보트라는 뜻의 Unterseeboot 운터제보트의 약자, "함(schiffe)"이 아닌 "정(boot)"으로 지정되어 있다. 19세기 중반에 독일 제국 해군이 개발해 명성을 날렸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기술 문제로 인하여, 잠수정지휘관을 역임한 칼 되니츠 제독이 그의 회고록에서 얘기했듯이 “필요한 때에 잠수할 수 있는 배”(가잠함)이란 말이 더 어울렸다. 그렇지만 유보트로 인한 연합군의 피해는 막대했다. 주로 미국에서 영국으로 가는 호송 선단 공격에 투입되었다. 물론 대서양 호송 선단 전투에서 유보트의 피해도 컸다. 당시 독일 해군이 사용 가능했던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전력이 유보트 함대였고 해저의 암살자로 불려왔다.

 

2차 세계대전 때 대표적인 유보트 7형을 보면 800t급으로 속도는 수상 12노트, 수중 4노트, 어뢰발사관 전방 4기 후방 1기(어뢰는 14기)를 탑재했다. 그중에 VII C형은 균형 잡힌 성능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었고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유보트, 독일은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잠수함의 건조가 금지되었지만, 나치의 재군비에 따라서 건조를 모르게 재건조해 배치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1,158척을 건조했다. 독일 U보트는 연합군의 군함 ·상선 5,150척(총톤수 2157만 726t)을 격침시키며 해저 사진으로 명성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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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는 전함 ·항공모함 ·구축함도 포함된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200∼300t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1,000t 넘는 잠수함을 발전 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주력이었던 U7형은 수상배수량 790t, 속력 17kn, 항속거리 1만 2000km이며, 어뢰발사관 5기를 장비하고 있었다. 1940년 6월 ~ 1943년 5월까지 최고의 전성기였던 시절에는, 연합군 수송전단을 발견하면 단독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근해에 있는 유보트에게 연락을 해서 3척~15척이 집단으로 공격한다. 외각에서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잠 방어망을 뚫고 들어가서 중앙에서 연합군 수상함을 공격했다.

 

연합군은 독일 U-보트에 대항해 대잠전력을 발전시켜 연합군의 보급선을 끊는 독일 잠수함 전력 사냥에 점차적으로 성공해 나아갔다. 연합군 수송선단은 유보트가 부상하면 탐지할 수 있는 신형 대수상레이더를 개발해 탐지하는데 점차적으로 성공했다.

 

이런 결과에 따라 2차대전 후기에 753척의 유보트가 침몰당했다. 

해상에서 적의 공격 및 기타 원인으로 630척, 항구 내에서 기뢰 및 기타 원인으로 123척이 수중 또는 해상에서 격침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전쟁 끝 무렵 해외기지 철수 시 그들 승조원에 의해 자침 또는 폭파 215척, 그리고 종전 시 영국 또는 연합군 측에 빼앗긴 유보트도 무려 153척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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