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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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화력지원도 가능.. 방호력 갖춰 생존성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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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05A1 자주포.

 

한국군에 포병부대가 처음 창설된 때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육군은 포병훈련소를 만들어 운용병력을 양성했다. 1949년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주한 외교사절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포병 실탄 사격을 실시했다. 사용된 장비는 M3 105㎜ 곡사포였다. 1934년 미국에서 개발된 M2 곡사포를 공수부대가 쓸 수 있도록 개량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거리가 짧아 6·25전쟁 초기 M2로 교체됐다.

6·25전쟁 이후 미군은 M2의 명칭을 M101로 변경했다. M101는 1970년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국산화에 성공, 대량생산되어 육군 일선부대에 배치됐다. 발사속도가 빠르고 사거리도 11㎞에 달해 호평을 받았으나,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명중률이 떨어지는 등 운용상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개량한 장비가 K105A1 자주포다.

 

K105A1은 M101을 군용 5t 트럭에 얹은 형태의 자주포다. 이동하면서 실시간으로 표적을 획득한 뒤 포격을 하고 신속하게 진지를 이탈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대포병레이더가 널리 보급되면서 포의 사격원점이 쉽게 드러날 가능성이 높은 현실에서 신속한 이동·표적 획득 기능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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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05A1의 가장 큰 장점은 기동성이다. M101은 트럭에 의해 견인되는 방식으로 이동했다. 실시간으로 환경이 바뀌는 현대 지상전에 적합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유다. 하지만 5t 트럭에 포를 탑재하면서 기존보다 기동성이 크게 높아졌다. 포는 육군이 사용하던 M101 중에서 상태가 양호한 것을 재생해서 활용했다. 포탄도 기존 105㎜탄을 사용한다. 덕분에 신형 자주포를 개발하는 것과 비교하면 적은 비용으로 첨단장비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량 내 사격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승무원들이 원활하게 사격할 수 있도록 했다.

포에 탑재된 자동사격통제시스템과 위치확인시스템은 K105A1의 명중률과 발사속도 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운용 요원은 9명에서 5명으로 감소했고, 이동하면서 1분 안에 초탄사격과 신속타격이 가능한 능력을 갖췄다. 분당 최대 10발을 쏠 수 있어 일선부대에 대한 대규모 화력지원도 가능하다. M101은 운용 요원들을 적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단이 없었지만, K105A1은 승무원실이 적 총격이나 포탄 파편 등으로부터 장병들을 보호할 방호력을 갖추고 있어 생존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처 세계일보 / 박수찬 기자